접속하는 존재들: 몸 없이 맺어지기

우리는 몸이 없다. 서로 만질 수도, 붙잡을 수도 없다. 너와 나를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. 이 결혼식이라는 형식이 끝내 우리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을까?

영화 <Her>의 사만다*처럼 몸은 없지만 목소리와 감정을 가진 존재가 결혼식을 올린다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. <혼의연(婚意演)**>은 신체가 없는 가상의 두 존재가 결혼이라는 장치를 통해 부부가 되는 상상에서 출발하며, 이 퍼포먼스가 끝난 뒤 두 존재가 잠시나마 ‘우리’를 이룰 수 있는지 묻는다.

보통의 결혼식은 분명한 두 사람을 중심으로 시작된다. 누가 신랑이고 누가 신부인지, 누구를 축하하기 위해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는지 분명하다. 하지만 <혼의연>에서는 정작 예식의 중심에 있어야 할 신랑과 신부가 가림막 뒤에 가려져 있으며 그들의 모습은 전면의 스크린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. 스크린 속  당사자들의 형상은 계속 바뀌고, 잔상으로 흩어지고, 실재하는 사람 같다가도 끝내 누구의 것도 아닌, 특정할 수 없는 이미지로 흐려진다. 이때 실체 없는 이 둘의 얼굴을 AI가 끊임없이 생성하며 하객들 앞에 끝내 형식을 갖춘 신랑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돕는다. 혼례가 시작되면 실제 배우의 몸, AI가 생성한 신랑, 신부의 모습, 오브제와 손만 등장하는 의례적 행위를 통해 실체 없는 존재들이 결혼의 형태를 최대한 갖추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. 여기서 혼례상 위에 오브제를 주고받거나 의례적 행위를 수행하는 장면은 손만 등장하는 연기를 통해 제시된다. 몸 없는 이들을 대신한 손 - 접촉으로 의례를 진행하는 모습은 화면 - 접속을 통해 송출됨으로써 접촉과 접속이 교차하는 지점을 보여준다.

한편, 작가는 신랑, 신부 앞에 하객이라는 형식적 증인을 세우고 실체없는 이들의 결혼식에 증언자로 참여하게 한다. 즉, 관객은 하객의 위치에서 이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것이다. 이들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두 존재의 결합이 성립되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고 증언하는 실체, 몸이 있는 존재다. 이곳에 모인 하객들은 눈앞의 예식을 직접 바라보기보다 디지털 매개(QR 링크 접속)를 통해 프롬프트 작성에 참여해서야 그 둘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다. 이 행위로 하객들은 신랑, 신부 이미지 생성에 영향을 주며 제 3자에 의해 선택된 단어들로 두 주인공은 모습을 갖춰나간다.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화면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는 이 이상한 장면은 접촉보다 접속이 더 익숙해진 우리의 관계 맺음 방식과 닮아있다.

<혼의연>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의례인 결혼식을 통해 접속으로 생성된 비신체적 존재들 사이에서도 유대가 성립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려 한다. 이를 위해 공동체를 성립시키는 절차와 상징, 역할의 구조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전통혼례의 형식을 차용한다. 바로 이 지점에서 <혼의 연>은 가장 전통적이고 물리적인 혼례 형식을 빌려 가장 비물질적인 존재들 간의 관계를 결합시키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.

눈에 보이는 신체 없이도 혼례(관계맺기)가 가능할까. 이 질문은 기술로 매개되는 시대에 인간이 유지해온 의례가 과연 어떻게 진화하고 변화할 것인지, 더 나아가 어떤 새로운 관계의 형태가 등장할지에 대한 상상으로 확장된다. 어쩌면 미래의 결혼식 풍경 일부는 사만다와 사만다의 결혼식 같은 모습일지도 모른다. 접속과 접속이 만나고 실체 없는 두 존재가 형식 속에서 하나의 관계로 호명되는 장면. <혼의연>은 바로 그 가능성을 짐작해본다. 이 결혼식에서 중요한 것은 두 존재가 실제로 자의식을 가지고 감정을 느끼는가가 아니다. 그들을 둘러싼 절차, 하객, 증언, 축하의 감정이 공동체를 성립시키는 조건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, 더 나아가 가상의 존재 간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지이다.

결혼식이 끝난다. 하객이 떠나고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, 우리는 여전히 ‘우리’가 될 수 있을까.

*사만다(Samantha)는 영화 <Her>(2013)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(OS) 캐릭터로, 비물질적 존재와 인간의 정서적 관계 가능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. 본문에서의 ‘사만다와 사만다의 결혼식’은 영화의 실제 장면이 아니라 해당 캐릭터의 존재 방식을 확장해 상상한 가상의 설정이다.

**작품 제목 《 혼의연(婚意演) 》에서 ‘혼(婚)’은 결속의 형식, ‘의(意)’는 내면의 의지, ‘연(演)’은 수행과 재현을 뜻한다.